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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전쟁시기, 백양전에는 신출귀몰의 군대가 있었다. 그들은 때로 어민으로 가장하여 적들의 망루를 탈취했고 때론 적들의 물자운수항로에 나타나 적들의 무기를 로획하기도 했으며 때론 적들의 “심장”에 깊숙히 들어가 매국노들을 제거하기도 했고 때론 머리에 연꽃잎을 얹고 입에 갈대를 물고 갈대숲에 은폐해 적들의 배를 습격하기도 했다. 이 일본군들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이 환영하는 대오가 바로 백양전에서 활약했던 수상유격대—연령군이다.
      1939년 가을, 일본군은 철과 동을 거둔다는 명목하에 백양전의 사냥호들에서 토종총과 토종대포를 바칠것을 요구했는데 이를 어기는 경우 사사로이 무기를 감춘 죄로 치죄했다. 백양전의 사냥군들이 총과 태포를 내놓으면 곧 생계를 유지할수 없게 된다. 모두들 더없이 의분강개하였다. 이런 불만심리를 이용해 항일구위원회에서는 시기를 맞추어 선전사업을 벌려 일본군의 항일역량을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까밝혔다. 당시의 구역위원회 서기 서건, 구역장 이강의는 친히 3개의 작은 부대를 이끌고 밤도와 대장장에 이르러 곽리구, 왕가채 일대 사냥군회의를 열어 모두 단결하여 토종총으로 일본군을 소멸해 나라를 보위할것을 호소하였다. 회의에서군중들은분발하여 20여명이참군하였는데자체로배와토종총을제공하였다. 군위원회에서는그들을한개반으로편성하여물위에서일본군을매복습격하기시작하였다. 총신의화약에습기가차지않도록하기위해그들은총신구(불을붙이는곳)에기러기깃털을꽂았다. 그들은또출발시배들이기러기대오의“인(人)”자형모양을유지하게하였는데마치기러기떼와흡사하였다. 하여현위서기후작부는이군대를연령군이라고명명하였다. 연령군은갈대슾이라는이천연병풍과해자가많은유리한지형을이용하여슬기롭고용감하게적들을소멸하였는데적들은그이름만들어도간담이서늘해졌다.
1941년 5월의 어느 오후, 연령군은 대장장과 왕가채 사이의 갈대숲에 숨어 일본군을 습격하려고 했다. 3시가 지나 일본군의 순라선들이 도착했는데 20여개의 총구가 동시에 사격하여 일본군20여명을 사살했다. 일본지원군이 도착했을때 연령군은 이미 배와 총을 감춘후 머리에 연꽃잎을 쓰고 입에는 갈대를 물고 태연하게 이가장까지 헤염쳐 퇴각했다. 이 전투후 연령군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겨났는데 바로 연꽃군이다.
      1942년 3월, 일본군이 백양전구역에 38개의 보루를 만들고 수십개의 촌을 하나의 큰 향으로 만들었는데 괴뢰군, 매국노들은 향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삽시간에 백양전은 백색공포에 뒤덮였고 백성들의 신음소리는 날로 높아갔다. 특히 왕가채와 곽리구 거점의 매국노 두목 한은용, 풍덕신, 조무림 이 세사람은 백성들로부터 백양전의 “3해”라고 불리웠다.
]       이런 국면을 돌려세우기 위해 현위원회에서는 적들의 거점을 교란하고 무기로획과 매국노 제거를 위주로 하는 투쟁을 벌리기로 하였다. 가을의 어느 저녁, 왕가채 거점의 괴뢰군 중대장 한은용은 밖에 나와 술과 반찬을 사려 하였다. 이때 두명의 장사군이 지나면서 “금방 만든 구운 닭, 구운 물고기를 사시오”라고 사구려를 불러댔는데 이는 마침 한은용의 기분에 맞았는지라 한은용은 그들을 불러세웠다. 한은용이 허리를 굽혀 물건을 보려는 찰나에 장사군들이 갑자기 천을 벗기면서 구운닭 밑에서 총을 꺼내며 외쳤다. “꼼짝 말고 두손을 들어라, 우리는 연령군이다."
      한은용은 놀란 나머지 땅에 털썩 꿇어앉아 애걸했다. 이떄 누군가가 “한은용, 너는 나라를 배신하고 적에게 의지하였으며 백성들을 괴롭혔으니 오늘 죽어 마땅하다.”라고 외치였다.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그 사람은 한은용을 한방에 쏘아 죽여버렸다. 이어 흰천을 시체위에 덮은 후 붉은 글씨로 “큰 낚시”라고 써놓았다. 소식이 퍼진후 백양전의 백성들은 모구 손벽을 치며 기뻐하였다. 얼마후 연령군은 또 지혜롭게 곽리구 거점을 들이쳐 풍덕신과 조무림 이 죄악이 사무치는 매국노들을 처단하였다.
      1943년 연령군은 연령군은 스파이를 이용해 총 한방 쏘지 않고 십방원, 장장자, 대전두 보루를 탈취했고 100여명을 포로했다. 매복전중 가장 유명한것은 연령군이 보운선을 습격한 사건이다. 1943년 10월4일, 정찰원 조파의 보고에 의해 연령군은 적들이 대량의 물자를 보정으로 운수해 도망치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연령군은 협상을 거쳐 이 물자들을 탈취하기로 했는데 한알의 쌀, 한오리의 실도 백양전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기로 했다.
      둘째날 이른 아침, 대장 정소신은 연령군의 멤버들을 거느리고 왕가채 둑 양변의 갈대늪에 매복했다. 오전 8시좌우, 적들의 보운선은 천천히 아군의 매복진내에 들어섰다. 이떄 정소신이 한방에 적들의 보초서는 병사를 쏘아눕혔고 잇달아 총소리가 진감하고 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연령군은 삽시에 적들의 배 두개를 제어하였다. 세척의 배의 적들만이 최후의 발악을 하였는데 배머리의 기관총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탄알을 퍼부었다. 이떄 연령군의 3명 대원이 장렬히 희생되었다. 대장 정소신은 사람들을 이끌고 재빨리 뒤로부터 진공하여 앞뒤 협공을 하였는데 적들은 무기를 내리고 투항할수밖에 없었다.
      이번 투쟁은 적들의 모든 물자를 성공적으로 탈취하여 상급에서 내려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이때로부터 백양전의 일본군은 모두 얻어맏는 피동적인 처지에 처하게 되였다.
      1939년부터 1943년에 이르까지 4년사이 연령군의 35차례의 투쟁중 16차례는 총 한방 쏘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 하여 연령군에게는 “전상의 신병”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였다. 현재 왕가체촌과 동둑 갈대늪이 바로 당년 연령군이 일본보운선을 통쾌하게 쳐부시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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